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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7 영화 구도와 디자인 – 지배적 대비
    영화의 이해 2023. 5. 5. 00:42

    촬영 가능한 영화의 소재가 3차원 세계에 존재하긴 하지만, 영화감독이 직면하는 주된 문제 중의 하나는 화가의 문제와 아주 흡사합니다. 양쪽 모두 평평한 직사각형 표면 위에 여러 가지 형태와 색깔, 선 그리고 구조 등을 어떻게 배열할 것인가의 문제에 직면하기 때문입니다. 고전적인 영화에서 이러한 배열은 대개 균형과 조화의 견지에서 이루어집니다. 균형을 이루고 싶은 욕망은 두 다리로 균형을 이루고 있는 사람이나 땅 위에 균형 있게 세워진 대부분의 구조물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본능적으로 우리는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 대체로 균형이 기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영화에서 이러한 규칙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예외가 있습니다. 시각예술가가 불균형의 상태를 강조하고 싶을 때, 고전적인 구도의 표준이 되는 관습들을 대부분 고의적으로 저버리게 됩니다. 영화에서 극적 맥락은 보통 구도 내의 결정적인 요소입니다. 피상적으로는 나쁜 구도인 것이 영화의 심리적 맥락에 따라 실제로는 아주 효과적일 수도 있습니다. 많은 영화들이 신경증적인 인물이나 뒤죽박죽인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럴 경우 감독은 고전적인 구도의 관습들을 완전히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인물을 영상의 중앙에 두지 않고, 그 프레임의 가장자리에 두고 촬영함으로써 오히려 그 인물의 정신적인 부조화를 상징적으로 전달할 수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영화감독은 시각적 균형에 얽매이지 않고, 심리적으로 극적 맥락에 한층 더 적합한 이미지를 관객에게 보여줍니다.

     

    이런 문제에 관한 고정된 규칙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버스터 키튼 같은 고전적인 감독은 대체로 균형이 잡힌 구도를 좋아합니다. 고전적인 전통에서 벗어나 있는 영화감독들은 비대칭적이거나 불안정한 구도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동일한 생각이나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테크닉이 있습니다. 시각적인 방식을 좋아하는 영화감독들도 있고, 대사를 선호하는 영화감독들이 있으며, 또 편집과 연기를 선호하는 영화감독들도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말해서,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라면 어떤 방식이든 좋습니다.

     

    사람의 눈은 자동적으로 구도에 담긴 형식적인 요소들을 전체적으로 조화시켜 보려고 합니다. 눈은 구도에 담긴 일곱 혹은 여덟 가지의 많은 주요 구성요소들을 동시에 인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 눈은 영상의 표면 위를 마구잡이로 두리번거리는 것이 아니라, 시퀀스 속의 특수한 영역으로 향합니다. 감독은 시각적으로 두드러지는 대비, 즉 지배적 대비를 사용하여 이렇게 되도록 합니다. 지배적 대비는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뚜렷한 대비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직접으로 우리의 시선을 끄는 영상의 영역을 말합니다. 그것은 영상 안의 다른 요소로부터 동떨어진 듯이 유달리 눈에 띄는 부분입니다. 흑백영화에서 지배적 대비는 대체로 명암의 병치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예를 들어, 만일 감독이 관객에게 배우의 얼굴보다 손을 먼저 보도록 하고 싶다면, 손의 조명을 얼굴의 조명보다 강하게 하고, 얼굴의 조명을 한층 약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컬러 영화에서는 어떤 색깔을 다른 색에 비해 두드러지게 눈에 띄게 함으로써 지배적 대비를 이룰 수 있습니다.

     

    지배적 대비를 먼저 보고 난 후에 관객의 시선은 보조적 대비를 훑어보게 되는데, 이 보조적 대비는 감독이 지배적 대비의 효과를 보완하기 위해 배치해 둔 것입니다. 그다음에도 관객의 시선은 시각적 구성물에서 거의 눈을 떼지 않습니다. 심지어 회화나 스틸 사진을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관객은 어떤 곳을 먼저 보고 나서 그다음 흥미가 좀 덜한 곳을 봅니다. 이 모든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시각예술가는 의도적으로 특정한 시퀀스가 이어지도록 영상을 구성하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영화 속의 움직임은 실제로 움직이는 사물과 사람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대체로 지배적 대비의 시각적 관심은 그 영상의 극적인 관심에 상응합니다. 그러나 영화는 시간적인 맥락과 극적 맥락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일부 미학자들이 본질적 관심사라고 일컫는, 이른바 움직임 그 자체가 종종 지배적 대비가 되기도 합니다. 본질적 관심사는 다만 관객이 스토리의 맥락을 통해 어떤 대상이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극적으로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을 의미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권총이라는 것이 단지 영상 표면의 작은 부분을 차지할 뿐이지만, 그 권총이 극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관객이 안다면, 시각적으로 사소해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그 화면에서 지배적인 성격을 띠게 될 것입니다.

     

    영상 안의 다른 요소들이 정적이면 움직임은 거의 언제나 자동적으로 지배적 대비가 됩니다. 심지어 삼류 감도조차도 움직임을 이용해 관객의 시선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말미암아 나태한 영화감독은 그가 다루는 영상의 풍요로운 가능성을 도외시하고, 오로지 움직임을 관객의 주의를 사로잡는 수단으로 여길 뿐입니다. 반면에 대부분의 감독들은 그들의 지배적 대비에 변화를 주어, 어떤 경우에는 움직임을 강조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움직임을 단지 보조적 대비로만 사용할 것입니다. 움직임의 중요성은 사용되는 쇼트의 종류에 따라 달라집니다. 롱 쇼트에서 움직임은 덜 산란한 편이지만 가까운 거리에서는 아주 뚜렷하게 눈에 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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