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사실주의적 영화와 형식주의적 영화 그리고 고전적 영화

1900년 이전부터 이미 영화는 두 가지 주요한 방향으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곧 사실주의와 형식주의입니다. 1890년대 중반에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가 일상적인 일들을 다룬 단편영화를 만들어 관객들을 즐겁게 한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열차의 도착 The Arrival of a Train’과 같은 영화들은 관객을 매혹시켰는데, 정확히 그 이유는 영화가 마치 그들이 실생활에서 본 사건들을 실감 나게 그대로 옮겨 놓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거의 같은 시기에 조르주 멜리에스는 순수한 상상의 사건들을 다룬 여러 편의 판타지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달세계 여행 A Trip to the Moon’과 같은 영화는 전형적으로 기발한 내러티브와 트릭 촬영을 혼합시킨 작품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뤼미에르 형제는 영화의 사실주의적 전통의 창시자로, 그리고 멜리에스는 형식주의적 전통의 창시자로 평가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주의와 형식주의는 절대적인 개념이라기보다는 일반적인 개념입니다. 어느 한 극단의 경향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할 경우에는 이 명칭이 유용하게 쓰일 수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명칭일 뿐 스타일에 있어서 전적으로 형식주의적인 영화는 드물고, 또 완전히 사실주의적인 영화는 드뭅니다. 대체로 사실주의적인 영화는 왜곡을 최소화하여 현실 세계가 드러나는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자 합니다. 대상과 사건을 촬영할 때, 영화감독은 삶 자체의 풍요로움을 보여주려고 애를 씁니다. 사실주의 영화감독과 형식주의 영화감독은 모두 혼란스럽고 불규칙적인 현실 세계로부터 반드시 특정한 디테일을 선택해야 하며, 또 그 선택된 것을 강조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실주의적 영화에서 선택의 기준은 그다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요컨대 사실주의 감독은 그들의 영화세계가 조작되지 않은 실제 세계의 객관적인 거울이라는 환상을 고수하려고 합니다. 반면에 형식주의적 감독은 그런 허세를 부리지 않습니다. 그들은 소재를 의도적으로 양식화하고 왜곡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조작된 대상이나 사건의 이미지를 현실로 착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양식화는 그것이 쇼의 일부임을 스스로 환기시킵니다.

 

사실주의적인 영화에서 관객은 그 스타일을 거의 눈치챌 수 없습니다. 감독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또 그의 모습을 잘 드러내지도 않습니다. 이런 영화감독들은 영상을 어떻게 조작할 것인가 보다는 오히려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에 더 많은 관심을 갖습니다. 카메라 사용을 보수적이게 말입니다. 본질적으로 카메라는 가능한 해설을 줄이고 실제 대상의 겉모습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기록 장치입니다. 일부 사실주의자는 그 나름의 형식미를 가지고 소재를 미화하지 않고, 생생한 모습의 영상을 추구합니다. “영상이 지나치게 아름다우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라는 말은 암묵적인 전제입니다. 가장 역점을 두는 것은 소박함, 자연스러움, 직접성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실주의 영화에는 예술적인 기교가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훌륭한 사실주의 영화일수록 기교를 숨기는 기술이 아주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형식주의적인 영화는 스타일 면에서 화려합니다. 형식주의적인 감독들은 현실에 대한 주관적 경험을 표현하는 데 관심을 기울일 뿐,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형식주의자는 종종 표현주의자로 불립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자기표현은 적어도 소재 그 자체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표현주의자들은 종종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진실에 관심을 기울이는데, 그들은 이를 물질세계의 표면을 왜곡시킴으로써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카메라는 소재를 설명하는 도구로서, 또 객관적인 특성보다는 본질적인 특성을 강조하는 수단으로 사용됩니다. 형식주의적인 영화에서는 현실에 대한 고도의 조작과 양식화가 이루어집니다.

 

사실주의자들은 대체로 그들의 주된 관심은 형식이나 테크닉이 아니라 오히려 내용이라고 주장합니다. 소재가 항상 가장 중요하고, 내용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 의문의 눈초리를 보냅니다. 가장 극단적인 형식의 사실주의적 영화는 실제 사건과 사람을 촬영하는 데 역점을 두는 다큐멘터리를 지향하는 편입니다. 반면에 형식주의적인 영화는 테크닉과 표현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스타일로 영화를 제작한 가장 극단적인 예는 아방가르드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영화 중에는 완전히 추상적인 것도 있는데, 순수한 형식(즉, 비재현적인 색, 선, 형태)이 내용의 전부입니다. 대부분의 극영화는 양극단 사이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으며, 관습적인 비평가들은 이런 영화를 고전적 영화라 부릅니다.

 

고전적 영화는 사실주의와 형식주의의 양극단은 피하면서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약간 그럴듯하게 양식화된 표현을 선호합니다. 이런 형식의 영화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스타일 자체는 거의 관심을 끌지 못합니다. 그 영상들은 진정성이나 단순한 형식미에 대한 요구보다는 스토리나 등장인물과의 연관성에 의해 결정됩니다. 이 영화가 암시하고 있는 이상은 스타일이 기능은 하면서도 눈에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상의 회화적 요소들이 연기하는 등장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쓰입니다. 고전적 영화는 스토리 위주입니다. 내러티브의 흐름이 산만해지거나 작가의 참견으로 스토리가 끊어지는 것은 거의 허용하지 않습니다. 스토리의 오락적 가치가 가장 중시되고, 종종 대중적 장르의 관심에 걸맞게 스토리가 다듬어지기도 합니다. 등장인물은 무명배우보다는 스타가 맡는 경우가 많으며, 가끔은 스타 개인의 매력을 돋보이게 하는 쪽으로 배역이 주어지기도 합니다. 인간이라는 소재가 고전적 영화에서는 가장 중요합니다. 등장인물은 대체로 매력적이고 다소 낭만적인 면도 있습니다. 관객으로 하여금 등장인물의 가치관이나 목적에 동조하도록 만듭니다.